여행의 온도

통영, 새벽 다섯 시의 시장에서

알람 없이 눈이 떠진 새벽, 항구 옆 시장으로 걸었습니다. 도시가 잠에서 깨는 소리를 듣는 일에 대하여.

여행지에서는 이상하게 일찍 눈이 떠집니다. 통영에서도 그랬습니다. 새벽 다섯 시, 커튼 틈으로 항구의 불빛이 새어 들어왔고, 저는 세수만 하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새벽 시장은 관광이 아니라 생활이 먼저 도착해 있는 곳입니다.

소리로 먼저 열리는 시장

시장은 이미 절반쯤 깨어 있었습니다. 생선 상자를 내리는 소리, 고무장화가 물을 밟는 소리, 스티로폼 박스가 포개지는 소리. 소리로 먼저 열리는 시장을 따라 걷다가, 김이 오르는 국밥집 앞에서 멈췄습니다. 새벽 장사를 마친 상인들 틈에 앉아 시락국 한 그릇을 받았습니다. 국물에서 바다 냄새가 났습니다.

낮의 시장이 무대라면 새벽의 시장은 무대 뒤편입니다.

옆자리 할머니는 사십 년째 이 시장에서 미역을 판다고 했습니다. 관광객이 늘어 좋으시냐 물으니, 좋기야 좋은데 새벽에는 여전히 우리들 시간이라며 웃으셨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낮의 시장이 무대라면 새벽의 시장은 무대 뒤편이고, 저는 운 좋게 그 뒤편에 잠시 서 있었던 것입니다.

해가 뜨자 시장의 온도가 바뀌었습니다. 저는 미역 한 봉지를 사서 배낭에 넣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하루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은 시간이 벌써 지나갔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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