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여행에서 하루 삼백 장씩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그 사진들을 다시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어느 날 알았습니다. 렌즈로 본 여행은 이상하게 기억에 잘 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공책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손으로 적는 감각
적는 것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버스 시간, 국밥값, 시장 할머니가 한 말, 여관 방의 벽지 무늬. 그날의 온도와 냄새를 한 줄씩. 사진이 장면을 저장한다면 문장은 감각을 저장합니다. 신기하게도 공책을 펴고 한 줄을 적는 동안, 그 장소를 한 번 더 자세히 보게 됩니다. 기록은 결과가 아니라 보는 방법이었습니다.
기록은 결과가 아니라 보는 방법이었습니다.
공책에는 실패도 남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두 시간을 헤맨 일, 문 닫은 식당 앞에서 돌아선 일. 사진첩에서는 지워질 장면들이 공책에서는 그 여행의 가장 재미있는 페이지가 됩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공책을 다시 읽는 밤이, 제게는 두 번째 여행입니다.
공책 한 권의 무게는 사진첩보다 가볍지만, 돌아온 뒤 책장에 꽂아 두면 여행이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