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온도

배낭 하나로 사흘, 덜어내는 짐 목록

캐리어를 버리고 배낭 하나로 다닌 지 삼 년째입니다. 짐을 줄이며 배운 것은 결국 불안을 줄이는 법이었습니다.

삼 년 전부터 캐리어 없이 여행합니다.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소도시의 보도블록과 시장 골목에서 캐리어 바퀴는 자꾸 걸렸고, 두 손이 묶이니 눈도 묶였습니다. 배낭 하나를 메자 걷는 여행의 반경이 달라졌습니다.

덜어내는 짐의 원칙

사흘 기준 제 짐은 이렇습니다. 갈아입을 옷 한 벌과 양말 두 켤레, 얇은 바람막이, 세면도구 조금, 수건 한 장, 공책과 펜, 책 한 권, 충전기. 이게 전부입니다. 요령은 두 가지뿐입니다. 옷은 숙소에서 빨아 널 수 있는 소재로 고를 것, 그리고 혹시 몰라서로 시작하는 물건은 전부 빼놓을 것.

짐을 덜어낸 자리에 여행이 들어옵니다.

혹시 몰라 챙기는 짐은 사실 물건이 아니라 불안입니다. 비가 오면 어쩌지, 추우면 어쩌지. 그런데 소도시에도 약국이 있고 시장에는 양말이 있습니다. 부족하면 그곳에서 구하면 되고, 그렇게 산 물건에는 여행의 기억이 붙습니다. 지난겨울 급하게 산 목도리는 지금 제 방에서 그 읍내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가벼운 배낭의 진짜 효용은 어깨가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잃어버릴까 지킬 것이 적으니 시장 좌판 앞에 오래 서 있게 되고, 계획에 없던 골목으로 쉽게 꺾어 들게 됩니다. 짐을 덜어낸 자리에 여행이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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